이유부부 세계일주 D+95
16th.Aug.2017. At Leh, Incredible India
M이 깨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애들 마중해야지?"
맞다. 너희들 가는구나.ㅠㅠ
2주동안 동거동락했던 동생들이 오늘 레를 떠난다.
다섯명은 다행인지 같은 날 비행기를 발권해서 비슷한 시간에 델리로 떠나기로 했다.
델리에서도 만나서 악샤르담도 가고 밥도 같이 먹을거란다.
우리만 두고 그러기야? 흑흑ㅜㅜ
세수도 안하고 부시시한 얼굴을 한 채 밖으로 나갔다.
M과 숙소 현관까지만 배웅하자고 나가서는 어느새 택시를 타기위해 내려가는 길까지 졸래졸래 따라가고 있다.
잘가. 한국에서 꼭 만나자.
인사를 하고 택시가 안보일때까지 손을 흔든다.
영락없는 이별 장면에 지나가던 현지인들이 이상스레 쳐다본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게 나는 아침부터 힘이 없다.
M도 마찬가지였는지
레에 머무는 일정을 급히 수정하기로 했다.
원래의 계획은 8월21일까지 약 3주동안 레에 머물기로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공허한 마음에 뭔가 특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대안!!
1. 스리나가르로 이동
2. 인도를 예정일보다 빨리 떠나 코카서스3국으로 이동
3. 마카벨리 5일 트래킹
4. 마날리로 이동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 네 가지 대안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며칠 뒤 결국 2번 대안으로 변경 성공함)
스리나가르가 있는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 중국, 파키스탄의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인데,
최근까지도 문제가 생겼던 분쟁지역이라 위험함을 감수하고 가기에는 용기가 없었고,
(용기가 아니라 만용일지도)
레를 떠나 델리로 당장 내려가 코카서스3국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터무니없는 비행기가격에 포기했다.
(어차피 미리 예매한 아제르바이잔행 항공티켓도 변경하기 힘듬)
그렇다면 판공초 이후 거의 한 일이 없는 우리에게 트래킹이 최선이었지만
무려 5일동안의 트래킹을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인터넷이 잘 된다는 까페 케이브에 앉아 의미없는 고민을 한참동안 한 서로를 바라보며 한바탕 크게 웃어댔다.ㅋㅋ
결론은 그냥 원래 계획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쉬면서 여기 머무르자.
쉬면서 레 근교나 스쿠터 타고 다니면서 돌아보자.
동료들이 다 떠난다니까 우리도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나보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꼭 한 번쯤은 좋은 사람들과 꼭 어울려 여러날 지내보고 싶었다.
특별히 한 일은 없었다.
매일 아침 M이 일찍 일어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정리하고 있으면,
동욱이가 올라와 "형 뭐해요?" 하면서
시끄럽게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매일 아침 알람소리 대신 M과 동욱이가 창 밖 테라스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깼고,
부스스한 눈을 힘겹게 떠 시계를 보면 늘 오전 10시였다.
그러면 난 창문을 활짝 열었고,
M은 동욱이와 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그런 동욱이를 M은 참 좋아했다.
오늘은 떠드는 소리도 없고 방문 앞 테라스에도 아무도 없다.
M은 아무도 없는 테라스에 홀로 앉아 늘 그랬듯 커피를 끓여놓고 동욱이를 찾지만
오늘만은 고요하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빵을 사와 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했고,
M이 모두를 위한 특제 짜이를 끓여주었었다.
남은 사람들은 사과나무정원에 모여 짜이를 마시며 빵이 오기를 기다렸더랬다.
케찹마요네즈소스에 양파와 토마토만 넣은 샌드위치는
서브웨이샌드위치보다 백배는 맛있었고,
어떤 날은 남은 야채를 넣은 파스타로,
또 어떤 날은 오백원짜리 과자와 짜이로 아침을 대충 때우기도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도 채 안되는 아침식사였다.
모두가 떠나버린 오늘은 사과나무정원도 텅텅 비어있다.
아침을 먹고 한참을 떠들다보면 시간은 훌쩍 흐르고,
누구는 낮잠도 잤다가,
누구는 햇살좋은 날에 빨래를 하고,
누구는 영화를 본다.
그러고 나서는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는 대화로 다시 2시간은 거뜬했고,
다같이 우르르 몰려가 양 손 가득 장을 봐왔었다.
우리의 아지트 사과나무정원에 둘러앉아 맥주 한 잔에 매일 12시가 다 되도록 떠들었었다.
저녁을 먹고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오는데 올뷰게스트하우스가 조용하고 적막하다.
모두 떠난걸 아는건지 매일 이 시간에 찾아오던 길냥이와 멍멍군도 오늘은 오지 않았다.
ㅠㅠ
M은 오늘 먹은 삼겹살 사진을 동생들에게 보내고 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오늘 비싸디 비싼 삼겹살을 구웠다.)
당분간,
우리 부부는 똑같은 이별 후유증을 겪지 않기 위해
서로만 의지하며 여행하자 다짐을 하였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우리는 34살에 타지에서 이별을 앓았다.
동료들이 떠나기 전날,
그동안 고마웠다며, 우리가 지나가며 예쁘다 했던 컵을 푼돈 모아 사서 선물해주었다.
동욱이는 현상금 수배지같은 엉터리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그리고 정성스런 손편지도.
가족같던 친구들이 남기고 간 선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올드몽크 한 잔에 취해 눈물을 훔치며 그 슬픔을 떨쳐내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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